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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 한 영화 아수라 다시 보다 (현실을 정면으로 비추는 거울, ‘아수라’의 구조, 결말의 비극성, 다시 봐야 할 이유)

by 드라마 영화 박사 2025. 5. 28.

영화 아수라 대표 포스터

2016년 개봉한 영화 아수라는 대한민국 범죄 액션 장르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 중 하나입니다. 개봉 당시부터 강한 논란과 찬사를 동시에 받은 이 영화는 그로부터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가 재조명되며 아수라의 주제의식과 메시지에 다시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본 리뷰에서는 단순한 스토리 소개를 넘어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한 상징적 의미와 캐릭터의 심리, 그리고 결말이 가지는 사회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현실을 정면으로 비추는 거울, 영화 ‘아수라’

아수라는 단순히 스릴 넘치는 범죄 액션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당혹감을 안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보다 인물 간의 복잡한 관계와 권력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집중하며, 도덕성과 윤리가 철저히 배제된 세계를 그립니다. 주인공 한도경(정우성 분)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패한 시장 박성배(황정민 분)의 사적인 해결사 역할을 맡으며, 점차 자신을 잃어가는 인물입니다.

정우성의 연기는 절제된 감정 표현을 통해 한도경의 내면적 갈등과 피폐해진 정신을 섬세하게 전달합니다. 반면 박성배 역을 맡은 황정민은 권력에 취한 인물의 무자비함을 강렬하게 드러내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주지훈, 곽도원 등 조연들의 연기 역시 밀도 있는 연출과 어우러져 영화 전체의 몰입도를 끌어올립니다. 이처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영화의 현실감과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영화 속 배경은 특정 지역을 상징하지 않지만, 구체적으로 묘사된 도심 풍경과 경찰서, 시장실 등은 실제 한국 사회의 권력 기관을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배경은 영화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음을 암시하며 관객의 체험적 몰입을 유도합니다.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아수라'가 단지 오락용 범죄 영화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상징과 은유로 짜인 ‘아수라’의 구조

‘아수라’라는 제목은 불교의 ‘아수라’에서 따온 것으로, 끝없는 투쟁과 욕망, 분노에 사로잡힌 존재를 의미합니다. 영화 속 모든 주요 인물은 이러한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생존과 욕망, 보호와 파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결국 모두 자멸의 길로 들어섭니다.

특히, 박성배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악역을 넘어 시스템 전체의 부패를 상징합니다. 그는 겉으로는 민선 시장이지만, 사실상 도시 전체를 사유화하고, 경찰조차도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종하는 전형적인 ‘무법 권력자’로 묘사됩니다. 이는 현실에서 보도되는 정치와 범죄의 결탁, 공권력의 오남용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관객은 박성배를 통해 현실 속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색채와 조명, 앵글 등 시각적 요소로도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어두운 조명과 회색톤의 도시 배경은 희망과 정의가 사라진 세상을 상징하며, 피와 어둠으로 점철된 연출은 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무너진 인간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이는 단순한 미장센이 아니라, 감독의 뚜렷한 주제 의식이 담긴 구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요 대사 중 “세상은 원래 지옥이야”라는 말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요약합니다. 이는 단순히 비관적인 시각이 아니라, 부패와 불합리가 구조화된 사회에서는 어떤 노력도 무력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영화의 비극적인 결말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결말의 비극성과 그 여운

아수라의 결말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압축해서 전달합니다. 한도경은 결국 박성배에게 배신당하고, 모든 것을 잃은 채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가 죽는 장면은 마치 희생 제물처럼 묘사되며, 정의를 위해 움직였던 검사와 경찰들마저도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이 결말이 주는 충격은 단순히 주인공의 죽음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박성배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살아남으며, 부패한 체제는 더욱 견고하게 유지됩니다. 즉, ‘정의의 승리’라는 일반적인 영화 구조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현실의 잔혹함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은 찝찝함과 무력감을 안고 영화관을 나서게 되며, 이는 오히려 감독이 의도한 바일 수 있습니다.

결국 아수라는 기존의 권선징악 서사를 거부하고, 현실에서 선한 의도가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비극입니다. 이 비극은 한 개인의 비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병폐를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으로 기능합니다.

영화를 다시 본 관객들은 결말에서 오는 감정적 충격을 넘어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고민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을 반추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예술작품이라는 점에서, 아수라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영화 속 악역 황정민 이 기자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모습

다시 봐야 할 이유

‘아수라’는 단순한 범죄 액션 영화가 아닙니다. 정치, 사회, 인간 본성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상징, 그리고 인물 간의 복잡한 갈등 구조를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비판한 영화입니다. 특히 최근 사회적 이슈들과 맞물리며,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단순한 관람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만약 처음 관람했을 당시 그저 “잔혹하고 불편한 영화”라고 느꼈다면, 지금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천천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감독이 숨겨 놓은 상징, 인물의 심리, 연출의 의도 등을 이해할 때, 아수라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깊이와 묵직한 여운을 더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바라보며 답답함을 느낀다면, 이 영화를 통해 그 감정을 마주하고, 또 한 번 현실을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아수라는 오락과 예술, 비판과 성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여전히 빛나는 작품입니다.